비가 그친 현풍 하늘에 뜬 무지개

집에 가다 말고 가족이 함께 쫓아간 저녁
2026년 8월 29일.
이날 현풍 쪽 날씨는 하루 종일 참 변덕스러웠다.
한동안 세차게 쏟아붓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멈추고, 조금 지나면 또 다시 빗방울이 떨어졌다.
멀쩡하던 하늘에서 갑자기 폭우 같은 소나기가 내리고, 그 사이로 다시 햇빛이 비치는 이상한 날씨.
그렇게 하루 일정을 마치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.
비도 어느 정도 그쳤고,
“이제 집에 가자.”
하고 평범하게 하루를 끝낼 참이었다.
그때 차 뒤편으로 희미한 색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.
무지개였다.

[사진 1 : 차창 너머 처음 발견한 무지개]
빗방울이 아직 그대로 남은 차창 너머로 처음 발견한 무지개.
처음부터 선명했던 것은 아니다.
회색빛 비구름 아래로 아주 희미하게 몇 가지 색이 보이는 정도였다.
그래서 처음에는
“저거 무지개 맞나?”
싶었다.
그런데 차가 움직이면서 시야가 트이자 조금씩 색이 분명해졌다.
“아빠, 무지개!”
차 안의 분위기도 금세 달라졌다.
아들과 아내는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.
나도 자꾸 거울과 주변을 확인하게 됐다.
문제는 우리가 집으로 가고 있었다는 것.
그냥 계속 가면 몇 분 뒤 무지개는 시야에서 사라질 것 같았다.
잠깐 고민했다.
집에 가야 하는데.
그런데 오늘 아니면 또 언제 이렇게 선명한 무지개를 보겠나.
결국 결론은 단순했다.
집은 조금 늦게 가도 된다.
나는 방향을 조금 틀었다.
아내와 아들은 사진을 찍고,
나는 무지개를 쫓기 시작했다.

[사진 2 : 산 아래로 조금 더 선명해진 무지개]
차를 몰고 조금만 더 가면 가까워질 것 같았다.
건물에 가리면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,
시야가 열리는 곳이 나오면 잠깐 멈춰 무지개를 확인했다.
물론 아무리 달려도 가까워질 리 없다.
무지개는 빛과 물방울이 만들어내는 현상이니 애초에 ‘끝’에 도착할 수도 없다.
그런데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그런 생각이 든다.
“저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더 잘 보일 것 같은데?”
점점 선명해졌다
그리고 정말 그랬다.
처음에는 희미했던 무지개가 장소를 옮길수록 조금씩 선명해졌다.
회색 구름 아래 놓인 산,
비를 먹고 짙어진 초록빛,
산허리를 감싸고 남아 있는 낮은 구름.
그 사이로 빨강부터 보라까지 색이 분명하게 드러났다.

[사진 3 : 이동 중 차 안에서 본 무지개]
집에 가다 말고 무지개를 따라가던 중. 처음보다 훨씬 선명해졌다.
사진을 다시 보니 그날 날씨가 그대로 느껴진다.
한쪽 하늘은 아직 비가 내릴 것처럼 어두운데,
다른 쪽에서는 햇빛이 들어온다.
그 두 날씨의 경계에 무지개가 있었다.
그리고 제대로 만났다
이리저리 따라가던 끝에 시야가 넓게 트이는 곳을 찾았다.
그곳에서는 무지개가 산과 산 사이에 제대로 걸려 있었다.

사진으로 봐도 색이 꽤 선명하지만 실제로 보고 있을 때는 더 인상적이었다.
비가 지나간 산에는 아직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를 하얀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고,
그 위로 무지개가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.
평범한 현풍의 익숙한 풍경인데,
무지개 하나 들어갔다고 전혀 다른 장소처럼 보였다.
비가 와야 볼 수 있는 풍경
생각해보면 참 이상하다.
그날 하루 종일 오락가락하던 비는 귀찮았다.
갑자기 쏟아지면 이동하기 불편했고,
좀 그치는가 싶으면 또 내렸다.
그런데 그 비가 없었다면 저 무지개도 없었다.
무지개는 맑은 날에는 볼 수 없다.
공기 중에 물방울이 남아 있고,
그 반대편에서 햇빛이 들어와야 나타난다.
비와 햇빛이 동시에 있어야 볼 수 있는 풍경이다.
굳이 인생 교훈까지 끌어오고 싶지는 않지만,
그래도 이런 날에는 살짝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.
힘들고 귀찮았던 일이 지나간 뒤에야 볼 수 있는 풍경도 있는 것 같다고.


비가 지나간 산과 들. 평소 자주 보던 풍경인데 이날은 조금 달라 보였다.
아이와 함께여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
나 혼자 운전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.
“오, 무지개네.”
하고 지나갔을지도 모르겠다.
사진 한 장 정도 찍고 집에 갔을지도 모른다.
그런데 아이가 신기해하고,
아내가 계속 사진을 찍으니,
나도 어느 순간 진심으로 무지개를 따라다니고 있었다.
아들은 뒤에서 무지개 위치를 찾고,
아내는 사진을 찍고,
나는 운전하면서
“여기보다 저쪽이 더 잘 보일 것 같은데?”
하고 있었다.
목적지를 정해놓고 떠난 것도 아니고,
어디까지 가겠다는 계획도 없었다.
그냥 무지개가 있는 방향으로.
생각해보면 이런 게 가족과 함께 있을 때 생기는 재미인 것 같다.
원래 계획에는 없던 일인데,
그래서 오히려 더 기억에 남는 일.
무지개는 결국 잡을 수 없었다
당연히 무지개의 끝에는 도착하지 못했다.
금화가 든 항아리도 없었고,
보물상자도 없었다.
ㅎㅎ.
그래도 꽤 괜찮은 풍경을 찾았다.
산과 산 사이,
비가 지나가며 남긴 옅은 안개 사이로 색깔이 내려앉아 있었다.
한동안 보고 있으니 처음 발견했을 때보다 조금씩 희미해지기 시작했다.
그리고 결국 우리도 다시 집으로 향했다.
잡지는 못했지만 기억은 남았다
몇 년 뒤 이 사진을 다시 보면 그날 정확히 어느 길을 돌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을 수도 있다.
하지만 사진을 보면 아마 이런 이야기는 생각날 것 같다.
“우리 이날 집에 가다가 무지개 보고 따라갔었잖아.”
그 정도면 충분하다.
가족의 기억이라는 게 꼭 대단한 여행이나 특별한 이벤트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.
평범하게 집에 가던 어느 날.
갑자기 비가 그치고,
누군가
“무지개다!”
라고 외쳤고,
그 말 한마디 때문에 집으로 가던 길에서 잠깐 벗어났다.
그리고 셋이 함께 같은 하늘을 쳐다봤다.
그날 하루 종일 귀찮게 내리던 비가
마지막에는 꽤 괜찮은 선물을 하나 남겨줬다.
2026.08.29
대구 달성군 현풍에서.
집에 가다 말고 무지개를 쫓았다.
끝내 잡지는 못했지만,
사진도 남았고,
그날 이야기도 하나 남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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